미국 경제가 다시 한 번 복잡한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다. 7월 물가 지표가 시장 예상과 부합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여파가 아직 본격적으로 반영되지 않은 가운데 기업 실적과 글로벌 자금 흐름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연준(Fed)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며 시장 안정에 나서고 있으나, 불확실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연준 선호 물가지표 7월 2.9% 상승
연준이 기준으로 삼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7월 전년 동월 대비 2.9% 상승, 전월 대비 0.3% 상승을 기록하며 시장 예상과 일치했다. 이는 최근 몇 달간 이어져 온 완만한 물가 둔화 흐름이 멈췄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 부과한 수입 관세의 효과는 아직 통계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장은 긴장하고 있다.
시장 참가자들은 연준이 9월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을 85%로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불과 한 달 전 63%에서 크게 높아진 수치다.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로,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지수다. 이 지수는 미국 전역의 데이터를 반영하며, 매달 미국 상무부에서 발표한다. PCE 물가지수는 CPI(소비자물가지수) 보다 더 광범위하게 소비자의 소비 양상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문에 PCE 가격지수는 연방준비제도(Fed)의 인플레이션 관리 주요 지표로 사용되며, 인플레이션 측정 시 계절적이거나 일시적인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사용된다. 특히 연준은 에너지, 식품 같은 변동성이 큰 품목을 제외해서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 근원 개인소비지출(Core PCE)를 더 중시한다.
캐터필러, 관세·노르웨이 변수에 직격탄
글로벌 경기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캐터필러(Caterpillar)는 관세 폭탄에 가장 먼저 흔들리고 있다. 회사는 올해 관세 부담이 15억~18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며, 이는 당초 예상치보다 높은 수준이다. 특히 3분기에는 6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 증가가 예상된다.
여기에 세계 최대 규모의 노르웨이 국부펀드(2조 달러 규모)**가 캐터필러 지분 전량을 매도한 사실이 알려지며 주가 하락에 기름을 부었다. 펀드 측은 회사 장비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서안 점령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 소식은 정치적 논란으로 확산돼, 미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은 노르웨이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주장하기까지 했다.
소포 관세 부과, 중소 전자상거래 ‘직격탄’
트럼프 대통령은 오랫동안 유지돼 온 **800달러 이하 소포 면세 규정(디 미니미스)**을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이제 해외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소포는 10~50%의 관세가 부과되며, 일부 운송사는 **정액 요금제(80~200달러)**를 선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대형 유통업체나 미국 내 물류 창고를 보유한 소매업체는 타격이 제한적일 수 있으나, 해외 직구와 중소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마진 압박을 견디기 어렵다고 경고한다.
IT·반도체 업계도 요동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Nvidia)는 매출의 약 40%를 상위 2개 고객사에, 나머지 46%를 4개 고객사에 의존하고 있어 ‘고객 집중 위험’이 지적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엔비디아의 압도적인 기술 우위를 고려할 때 이는 오히려 산업 지배력 강화로 작용한다고 분석한다.
반면 마벨 테크놀로지(Marvell)는 3분기 데이터센터 매출 정체를 전망하며 주가가 13% 폭락했다. 시장의 높은 AI 수요 기대치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드러나면서 반도체 업종 전반에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연준 월러 이사 “금리 인하 시점 도래”
이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 연준의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9월 0.25%p 금리 인하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는 단기적으로 노동시장 약화 가능성을 우려하며, 향후 3~6개월 동안 추가 인하가 필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월러는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로,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어 그의 발언은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 증시·금값, 안전판 역할?
중국 증시는 8월에만 1조3천억 달러 규모의 시가총액 증가를 기록하며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9월 3일 전승절 열병식을 앞두고 중국 정부가 시장 안정을 유도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과열 신호와 높은 신용거래 수준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한편, 국제 금 가격은 온스당 3,415달러에 거래되며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다. 금값 상승은 연준 정책 불확실성과 관세발 인플레이션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투자자들이 다시 안전자산으로 몰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관세’의 파급력, 아직 시작일 뿐
7월 물가 지표는 안정적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관세 정책이 본격적으로 미국 경제 지표에 반영되기 시작하면 충격은 더 클 수 있다. 연준은 선제적 금리 인하로 대응에 나설 태세지만, 관세와 글로벌 정치·외교적 갈등이 동시에 불거지면서 금융시장 불확실성은 당분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