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시 동편 델라웨어강변에는 식민지시대의 고택이 즐비한 유서깊은 동네 퀸빌리지(Queen Village)가 있다. 필라델피아 이민 초창기에 스웨덴 이주민들이 터를 잡기 시작한 유서깊은 마을이다. 퀸빌리지라는 마을 이름도 크리스티나 스웨덴 여왕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퀸빌리지 마을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사우스 프런트 스트리트(south front street)의 한적한 가로공원이 앞으로 일제 강점기 제국 군대에 끌려간 위안부 피해자들을 상징하는 소녀상을 상설 전시하는 ‘소녀상공원'(Stutue of Peace Plaza)으로 바뀔 예정이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과 전세계에서 소녀상은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소녀상공원이 세워지는 것은 필라델피아가 처음이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필라델피아 소녀상공원추진위원회(위원장 조신주)가 지역주민들과 교류을 확대하고 소녀상공원 건립 프로젝트를 알리기 위해 퀸빌리지의 이 가로공원에서 ‘안녕! 퀸빌리지의 한국'(AHN-NYOUNG! KOREA iN QUEEN VILLAGE)이라는 이름으로 한국문화공연을 열었다.
이제까지 소녀상공원을 지속적으로 힘차게 추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필라델피아한인회(당시 송중근 한인회장)가 위안부 피해자와 역사를 미국사회에 알리기위해 시작한 기림비설치 모금운동에서 비롯되었다. 필라델피아한인회는 당초에 기림비를 설치하려고 부지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에 봉착했다. 여러가지 이유로 장소 섭외가 쉽지 않았다. 이후 이 프로젝트는 기림비설치에서 소녀상공원으로 바뀌고 필라델피아시의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응모해 시정부차원의 의사결정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미국과 독일 등 세계 각국에서 운동처럼 일어나고 있는 소녀상 설치 움직임은 일본 정부와 극우세력들의 방해공작으로 곳곳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일본 극우세력들은 필라델피아 소녀상공원 프로젝트 진행상황을 내밀하게 모니터링하면서 끈질긴 방해공작을 물밑에서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필라델피아지역 한인사회와 미국 시민사회는 이같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십시일반의 정성을 모아 기림비설치에 힘을 보태왔고 그 결실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공원 앞 한가운데에는 퀸빌리지 주민들이 한가로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거나 쉬어가는 커다란 벤치가 놓여 있다. 벤치 바로 뒤쪽 나무들이 무성한 지점에 앞으로 소녀상과 의자 등 조형물이 설치될 예정이다.
이 가로공원은 나무가 많아, 한낮의 뜨거운 태양빛을 가려주며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지역주민들의 친근한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공원 안으로 조금 들어서면 언덕진 동쪽 화단에 만개한 흰색 수국화가 소녀상을 바라보듯이 피어 있었다.
지금은 필라델피아 도심에서 보는 여느 가로공원과 비슷하게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공원이지만, 이후에 소녀상조각공원이 완성되면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 되어 있을까? 오랜 시간동안 소녀상공원에 지지와 성원을 보내온 사람들에게는 소녀상공원이 어떤 곳인지 알리고 퀸빌리지 사람들의 반응을 들어보는 설레는 날이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필라델피아에서 좀처럼 보기힘든 한국 전통 부채춤, 검무, 사물놀이, 모듬북연주 등 한국 전통문화 공연이 펼쳐졌다. 남부뉴저지통합한국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한국문화 공연팀들은 이날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전통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등장한 남부 뉴저지 통합 한국학교 무용팀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넋을 위로하듯이 공원을 무대로 화려한 춤사위를 선보였다. 남성 모듬북팀이 두드려대는 우뢰와 같은 북소리도, 퀸빌리지 프론트스트리트를 따라 긴 여운을 남기며 필라델피아 시내로 힘차게 퍼져나갔다.
작은 공원 이곳 저곳에서는 한글쓰기, 공기놀이, 제기차기, 한국 공예품전시 판매 그리고 한국 홍시맛 커피콩, 필라델피아 한인식당 할인상품권 판매 등 다양한 부대 행사도 함께 열려 방문객들에게 한국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즐기는 기회도 제공했다.
구경나온 퀸빌리지 주민들은 저마다 셀폰과 카메라를 꺼내들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공연되는 한국전통문화공연 모습을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퀸빌리지주민과 이곳을 지나가는 필라델피아시민은 물론 멀리 뉴저지와 메릴랜드에서도 이 행사를 보기위해 온가족이 함께 차를 타고 온 방문자들도 있었다.
메릴랜드주 월도프지역에 사는 핸더슨씨는(사진) 구글검색을 통해 행사소식을 접하고 세자녀들과 함께 차를타고 행사장을 찾았다. 핸더슨씨는 장남이 대학에서 부전공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있고, 가족들이 한국드라마를 즐긴다면서 가족들을 한 차에 태우고 필라델피아 퀸빌리지 행사장으로 달려왔다. 이날 공연도 보고 많은 사람들과 즐거운 만남을 가졌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나선 대학생인 신서영씨는 이날 “필라델피아에 소녀상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다”는 반응을 보이며 “사람들이 소녀상에 대해서 알 수 있게될테니 좋다”고 말했다. 또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 친구들에게도 오늘과 같은 행사를 함께보러 올 수도 있고, 이곳에 와서 소녀상에 대해서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며 소녀상공원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필라델피아 소녀상공원추진위원회 자원봉사 대학생 신서영씨 ⓒ Voice of Diversity TV
이번 행사를 위해 남부뉴저지통합한국학교 친구들과 함께 검무를 춘 임시아 학생은 “친구들과 동선도 잘 맞아서 공연을 잘 해낼 수 있었고 관객들로부터 박수를 많이 받았고 반응이 좋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딸 시아를 데리고 공연장을 찾은 임채무씨는 “미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면서 미국사람들에게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다”면서 “이런 공연행사에 참가하게되어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소녀상공원추진위원회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본격적인 소녀상공원 알리기에 들어갔다. 앞으로 9월까지 매주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5시부터 1시간 동안 문화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추진위 조신주 위원장은 이날 “퀸빌리지 지역주민들과 더불어 한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행사를 열고 일본 제국 군대에 의해 성노예를 강요당했던 20만명 이상의 소녀와 여성, 그리고 역사의 증인으로 나선 생존자들을 기리기 위한 공원조성에 대해 공감을 넓히고 보다 많은 지지와 성원을 얻기위해 이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조신주 필라델피아 소녀상공원추진위원장 ⓒ Voice of Diversity TV
조 위원장은 또 “소녀상 공원은 소녀상을 전시하는 공원일 뿐만 아니라 모든 범아시아계와 필라델피아에 살고 있는 다민족을 위한 공원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전쟁과 여성인권에 대한 문제는 저 개인의 아픔이면서 전 세계인의 아픔이기 때문에 이렇게 새로운 공원을 조성해 공공장소를 마련해서, 사람들이 당당하고 또 서로 화목하게 밖으로 나와서 공간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는 희망도 전했다.
앞으로 남은 소녀상공원추진 과정은 필라델피아시의 시공계획서 평가와 면허검사 과정 등 실무적인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승인된 개념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시공 계획서가 필라델피아시 예술위원(Philadelphia Art Commission)의 승인을 받고나면, 공원유지기금계좌를 개설하고 면허검사국(Department of Licences & Inspections)에서 공사허가를 받아 마침내 공원착공에 들어갈 수 있게된다.
소녀상공원추진이 원만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공원건립에 소요되는 자금 확보도 중요한 관건이 되고 있다. 안정적인 재정계획을 세워 필라델피아시 당국의 최종승인을 얻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시공과 준공 이후 공원 유지 보수를 위해 36만 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보고 50만 달러를 목표로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 위원회는 필라델피아한인회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가 모금운동을 벌여 관리 중이던 기림비 건립기금을 이양받고, 개인 성금모금과 함께 여성인권 관련 재단과 단체들의 후원을 중심으로 모금운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조신주 위원장은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올해 연말이나 내년 봄에 착공을 시작하고 22년 말쯤 소녀상공원이 완성되어 일반에 공개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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