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17일) 서재필기념관앞 정원에 핀 철쭉꽃들이 오락가락 내리는 가벼운 봄비를 맞아 촉촉히 젖어가고 있었다. 봄비를 머금어 더욱 싱그럽고 화사한 분홍색 철쪽꽃들은 한인입양아 초상화전시회 개막행사를 찾아 기념관 정원으로 들어서는 내방객들을 맨 먼저 맞았다.
초상화작품을 전시하는 작가는 미국에 입양되어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한인동포 에이미 헤르젤(A.D. Herzel)씨. 헤르젤씨는 24점의 한인입양아들을 그린 초상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헤르젤씨는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인 입양아들을 인터넷으로 접촉, 사진을 받아 이를 바탕으로 사실적인 초상화와 추상적인 초상화들로 나누어 작업했다.
사실적인 초상화 작업을 위해 화가는 클레이보드위에 흑연을 사용해 생생한 눈빛으로 입을 다물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아이들의 세밀한 표정을 담아냈다. 그림 앞에 서면 입양기관에서 부여한 번호표를 달고 있는 아이들이 마치 무언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사실감이 느껴진다.
작가는 또 추상적인 초상화작품들에서 한지위에 입양아들의 실루엣을 그리고 골드페인트를 칠한 뒤 그 위에 흑연을 사용해 화려하고 환상적인 수많은 꽃무니를 아로새겨 놓아 입양인들의 삶에 대한 긍지를 담은 내면세계를 표현했다.
헤르젤씨는 뉴욕,캘리포니아, 펜실베니아, 텍사스, 플로리다, 오레건,미네소타, 메사추세츠와 노르웨이 등에서 12명의 입양인이 참석해 그들의 이야기와 사진을 공유해 주었다고 밝혔다.
헤르젤씨는 이번 전시프로젝트가 “우리 한국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나와 내 또래의 여정을 탐구하고 문화적 개척의 길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러 면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입양인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시선에 대한 입장도 전했다. “종종 입양의 주제는 입양 부모의 관점에서 이야기되었는데 이 프로젝트에서는 입양인의 목소리가 중심에 있고 초상화는 입양 과정에서 잃어버린 한국인의 삶과 정체성을 기리는 기회다”고 헤르젤씨는 강조했다. 그는 이어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자신의 ‘집’에서 외국인으로서 태어나고 문화와 언어와 단절된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헤르젤씨는 이어서 “이 프로젝트는 동정 놀이가 아니라 공감, 이해, 축하를 위한 것”이라면서 “미국과 유럽으로 입양된 200,000여명 이상의 어린이 중에서 많은 어린이가 성공적으로 자랐지만 이가운데 많은 어린이는 잘 자라지 못했고 여전히 위험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펜실베니아주 남동쪽 몽고메리카운티 로이어스포드시장으로 일하고 있는 제나 안토니위츠(Jenna Antoniewicz)는 한국입양아초상화전시회를 보러 서재필기념관 전시장의 문이 열리기 무섭게 한걸음에 달려왔다. 어린나이에 미국으로 입양되어 미국가정에서 성장한 제나는 처음 작품을 보았을 때 엄청나게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그림 하나하나마다 다른 이야기와 복잡성, 미묘한 차이점까지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화가 헤르젤이 지난 2년동안의 작업과정에서 작품마다 쏟아부은 많은 관심과 세심함으로 입양아들의 본질적인 진실을 포착해낸 점이 매우 놀랍다고 평가했다.
입양아초상화전시회를 위해 작가에게 자신의 사진과 사연을 제공한 한국입양인 멜리사(Melissa Myers Gelwicks)씨는 전시회장에 걸린 자신의 아기때 모습을 모고 ” 고국에서 낯선 외국땅으로 떠나는 3살적 어린 나의 눈을 바라보고 잉크로 그려진 금색 꽃잎문양으로 그려진 내 이미지를 볼 수 있어서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고 썼다.
헤르젤씨는 또 “5월 21일 오후 4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열리는 입양아주제 패널토론에서는 입양인들의 이러한 불편하고 어려운 대화의 문을 연다”고 밝혔다. 국제적인, 인종적인 그리고 한국입양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들을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차원까지 다각도에서 살펴볼 예정이다.
한인입양아 초상화프로젝트를 통해서 헤르젤씨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거나 이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다른 한인입양인에 다가가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또한 그녀는 “한인 사회에서 한인 입양인이 차지하는 위치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대학에서 추상화를 전공한 헤르젤씨는 초등학교, 커뮤니티센터, 템플대 등에서 예술강사로 일해오면서 20여년동안 작품활동에 메달려왔다. 팬데믹 이후로는 온라인 한인 입양인 커뮤니티에서 자원 봉사를 하며 미디엄(Medium)지와 온라인 잡지 유리버설 아시안(Universal Asian)에 글을 쓰고 미네소타주에 있는 입양인 허브(Adoptee Hub) 이사회에서 행정 담당 부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펜실베니아예술아카데미(PAFA)를 졸업하고 템플대미술대학 타일러아트스쿨(Tyler School of Art)에서 예술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경찰인 남편과의 사이에 두 아들을 키우며 버지니아주 블루리지(Blue Ridge, Virginia)에서 살고 있다.
이번 전시회를 주최한 서재필기념재단의 최정수회장은 “서재필박사도 이곳 외국땅에 와서 활발하게 활동했다”면서 “한인입양인들도 마찬가지로 미국사회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데 이곳 서박사 기념관에서 전시회를 열게 된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최회장은 “에이미 헤르젤 화가가 이번 전시회와 부대행사를 조직하고 이곳에서 저희와 함께 일하게 된것이 서재필기념재단의 목적과도 정말 일치한다”면서 “서박사가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는데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한인입양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회장은 서재필기념재단이 젊은 한인입양인들과 네트워크를 갖기를 희망하고 다른 아시아계 커뮤니티의 젊은이들과도 함께 어울리고 서로 도우면서 살 수 있도록 교류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나타냈다.
서재필기념재단(회장 최정수)가 주최하고 재외동포재단과 펜주 주지사 아시아태평양 자문위원회가 후원하고 있는 한인입양아 초상화 프로젝트’동방에서 온 씨앗들'(Seeds from the East) 전시회는 지난 4월 30일부터 시작,다음달인 6월 5일까지 열린다. 코로나바이러스사태로 관람객 방문은 사전에 전화(610-241-6582)로 약속을 받고 있고 입양아주제 패널토론(Art & Therapy Based Strategies Addressing Transracial Post Adoption Life)과 영화상영(‘Found in Korea’)은 온라인 비대면 행사로 진행된다.